곡우(穀雨):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 맞으며 새싹이 움틉니다 제철 사랑단 vol.6 곡우(穀雨):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 맞으며 새싹이 움틉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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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면 만개한 라일락 향이 제일 먼저 반깁니다. 거리가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해지는 이 시기. 곡우(穀雨)입니다. 점점 무성해지는 나무와 꽃의 환희가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때죠. 화단의 연두색 새싹과 민들레도 분주합니다. 비가 왔다 갔다 한 사이, 땅속에서 무언가 결심을 한 모양입니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른다'는 뜻으로, 이 무렵의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씨앗에 보내는 신호라고 합니다.
벚꽃이 지고 나면 봄이 끝난 것만 같은데, 사실 곡우는 봄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꽃비는 멎었지만, 어쩌면 지금이 봄의 찬란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꽃이 진 자리마다 잎이 차오르고, 비가 지나갈 때마다 초록은 더 짙어집니다. 화려함보다 충만함에 가까운 계절입니다. 제철사랑단과 함께 절기 이름을 불러온 덕분에, 꽃이 진 뒤에도 계절을 잃지 않게 됐습니다. 라일락이 지면 찔레가 피고, 찔레가 지면 아카시아가 온다는 것도요. 봄이 한 번에 오지 않았던 것처럼, 한 번에 가지도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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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탁 | 봄의 마지막, 주꾸미 차례입니다
글 후암동삼층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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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가 봄의 마지막 절기라고 합니다. 벚꽃도 마쳤고, 재킷을 입으면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요. 몇 주간 봄나물과 봄 채소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주엔 해산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뉴스레터 원고를 적으며 지난 2주간 뭘 먹고 어떤 계절을 즐겼나 살펴보는데, 신기하게 주꾸미를 세 번이나 먹었더라고요. 주꾸미 샤브샤브 한 번, 데친 주꾸미 한 번, 그리고 마다밀의 새 메뉴로 한 번!
봄 주꾸미는 무엇이 특별할까요? 3월부터 5월, 딱 지금, 머리에 알이 가득 차서 맛과 영양이 절정인 시기입니다. 내장을 손질하다 보면 살짝 투명한 크림색 알 덩어리를 만져볼 수 있는데, 이게 익으면 고소하면서 녹진하게 뭉개지는 맛을 내거든요. 살도 바다 향이 진하고 단맛이 높아지는 시기지만, 알이 가장 큰 특징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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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획량이 줄어서인지, 그 작은 주꾸미 한 마리 가격이 4~5천 원에 육박해요. 식당에서 쓰기 부담스러운 재료지만, 올해엔 큰맘 먹고 써봤습니다. 봄 채소를 가득 넣고 주꾸미를 살짝 데쳐 감바스 형태로 만든 “봄 채소 주꾸미 감바스” 은은하게 향긋한 봄 채소들과 주꾸미의 단맛이 어우러져, 콸콸콸 와인 안주랍니다.
봄나물은 슬슬 물러날 것 같은데요. 이제는 주꾸미 차례입니다. 여름이 오기 전, 꼭 즐겨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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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잡담 | 씩씩하게 자라날 결심, 정민과의 보문동 산책
글과 사진 전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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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동의 조용한 골목, 오랜 시간 정성껏 가꿔온 식물 작업실 '초아진'의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이번 산책의 동행인은 분재와 식물을 다루는 정민 님입니다. 평생을 '우등생'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왔다는 정민님. 이제 그는 실패 없이 매끄러운 길만 걷기보다, 생채기를 내며 씩씩하게 걷는 법을 연습 중입니다. 무기력을 털어내고 "살아야지!"라며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정민 님을 보면 , 봄기운을 머금고 움트는 단단한 새순이 떠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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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메이트: 정민(@choajin_studio)
- 산책 코스: 보문동 초아진 작업실 일대 ~ 성북천
📍 Scene #1. 새들이 낙상홍을 먹지 않는 이유
정민: 산책하다 보면 '낙상홍'이라는 나무가 있잖아요. 사람들은 보통 열매가 있으니까 새들이 좋아하는 나무라고 퉁쳐서 생각하거든요 . 종원: 빨간 열매가 열리니까요. 정민: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겨울 내내 붉은 열매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 사실 새들한테 인기가 없다는 뜻인 거예요 . 준베리 같은 열매는 하루만 지나도 새들이 다 따먹어서 없어지거든요 . 종원: 그렇네요 정민: 네. (웃음) 내가 알던 상식이랑 달랐던 거죠. 식물을 계속 다루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매년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고 오해가 깨지는 과정이 저한텐 참 기뻐요.
📍 Scene #2. 우등생의 번아웃, 그리고 씩씩하게 살기
정민: 저는 제 평생을 우등생처럼 스스로를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우등하지 못하면 죽는 병이 좀 있었거든요 . 종원: 스스로를 몰아붙이셨겠네요. 정민: 맞아요. 그러다 작년에 너무 지치고 멘탈이 무너져서 우연히 상담을 보러 갔어요. 근데 거기서 "너무 어른스러우려고,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두루뭉술하게, 씩씩하게 살아라"고 하더라고요. 종원: 씩씩하게 살기. 좋은데요? 정민: 진부할 수도 있는데, 그게 저한테는 굉장한 테라피였어요. 제가 요새 잃어버렸던 가치였거든요. 씩씩하게 사는 거 . 똑같은 상황도 내가 좋게 보면 좋은 일이 되는 건데, 그걸 인정하니까 훨씬 단단해진 기분이에요.
📍 Scene #3. 초아진, 사랑하니까 다르게 써볼게요
정민: 사실 작년에는 '초아진 그냥 그만둘까?' 했어요. 그 자리에 앉아있기조차 힘들었거든요. 종원: 이렇게 예쁘게 꾸며놓은 공간을요? 정민: 그러니까요. 그만두기엔 제가 이 공간을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쓰면 제가 너무 배알이 꼴릴 것 같아서 안 되겠더라고요 (웃음). 종원: (웃음) 솔직하시네요. 정민: 그래서 이제는 이 공간의 정체성을 너무 하나로 고정하지 않으려고요. 다른 분들이 들어와서 팝업도 하고 공유 가게처럼도 써보면서 가볍게 실험해 보고 싶어요. 생사고락을 좀 겪어야 저도 더 무게감 있게 이 공간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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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산책 팁: 늦게 피는 '꽃눈' 찾아보기
요새 날씨가 워낙 따뜻해 성북천의 웬만한 꽃망울들은 벌써 활짝 피어버렸죠. 하지만 만개한 꽃들 사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작고 단단한 '꽃눈'들도 남아있습니다. 수국처럼 남들보다 조금 늦게 피어나는 식물들도 있고요.
아직 꽃을 틔우지 못했다고 해서 쉬고 있거나 뒤처진 게 아닙니다. 정민 님과 길을 걷다 보면, 그 앙상한 가지 속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는 생명력을 기막히게 찾아내게 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남들처럼 당장 화려한 성과를 터뜨리지 않았더라도 괜찮습니다. 내 속도에 맞춰 씩씩하게 영글어가고 있는 나만의 '늦깎이 꽃눈'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산책을 즐겨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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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문장 | 삶에도 오프리쉬가 있다면
글 현예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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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날이다. 살갗에 닿는 바람은 덥거나 시린 기운 없어 산뜻하고, 걷기를 불평하지도 않는다. 바깥을 마냥 사랑하게 되는 나날, 감탄하다가 산책이 끝나버리는 시간. 화단의 철쭉을 향한 미소띈 얼굴을 보고 있다 보면, 모든 사람이 너그러워지는 계절임을 확신하게 된다. 나와 연인 그리고 옹심(1살)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영월로 떠났다. 지난 가을, 즉흥적으로 떠난 영월에서의 기억을 곱씹을 셈이었다. 반짝이는 동강, 느리게 걷는 네 마리 개, 거실에 철푸덕 누우면 온갖 새소리가 곳곳에서 날아들던 곳. 어떤 기억은 나를 살게 한다.
다시 찾은 동강은 변함 없었다. 허물고 새로 짓길 반복하는 도시와 완벽히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굳이 달라진 점을 말하자면, 영화의 여파로 영월 시내가 훨씬 더 북적였고, 붉은 메밀꽃이 있던 자리에는 초록 새잎이 가득하다는 정도.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우리였다. 같은 여행지를 가까운 시일에 다시 오는 일의 이점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를 기민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옹심이는 지난 번보다 조금 더 컸고(5kg > 7kg), 나와 연인은 지난 번보다 조금 더 고민이 많았다. (어쩌면 지난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진 걸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심란한 얼굴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번 영월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옹심의 표정이다. 개의 표정이라니, 비반려인에게는 미신처럼 느껴질 테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 최근 연구자들은 개의 일부 감정은 얼굴만으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개의 얼굴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같은 '헥헥'이라도 불안과 기쁨을 구별해낼 수 있다. 영월에서 옹심이는 온몸으로 기뻐했다. 아무도 없는 동강에서 잠시나마 줄을 풀고 달릴 때, 옹심이는 진흙을 흠뻑 묻힌 상태로 웃었다. 앞에 강이 있는 줄 모르고 몸을 던졌다가 다리를 쫄딱 적시고 터덜터덜 걷던 순간, 어느 때보다 활짝 갠 얼굴로 내게 달려 오는 순간. 주어진 지금을 정면으로 만끽하는 옹심이가 보였다. 행복은 저런 형상이구나. 무작정 뛰어보는 것.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발이 젖어도, 일단 정면으로 가보는 것. 동강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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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몸을 움직이고 숨 쉬는 존재. 살과 공기로 이루어진 생명체인데 우리 존재의 공기 부분은 보통 보이지 않는다. 투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광선을 먹고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들만 보인다.
팀 잉골드, 조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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