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淸明): 따뜻하면서도 맑은, 그야말로 화사한 봄을 알리는 날 제철 사랑단 vol.5 청명(淸明): 따뜻하면서도 맑은, 그야말로 화사한 봄을 알리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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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봄' 청명을 맞이한 요즘은 매일 아침 풍경이 다릅니다. 팝콘이 터지듯 벚나무들이 분주히 꽃을 틔우고 있거든요.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걷던 사람들도 이 시기만큼은 고개를 들어 나무의 행렬을 바라봅니다. 나이를 막론하고 만개한 봄에 감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삶의 이유가 간명해집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현재를 누리는 것. 어쩌면 우리가 봄에 환호하는 이유는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은 찰나의 반짝임이고, 이 계절의 안온함도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평소보다 부지런해지는 봄입니다.
봄의 절정에 접어든 만큼, <mada> 봄호 소식이 궁금하실 텐데요. 제철사랑단 독자 분에게만 스포일러를 하자면, 이번 봄호의 주제는 '휘청이는 봄'입니다.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시작에 대해, 달콤하기보다 쌉쌀한 향을 머금은 봄 채소처럼 뾰족한 봄과 관련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특별한 이야기들을 한 지면에 가득 안아 갈게요. 그때까지 제철 소식은 '제철사랑단'을 통해 받아보는 거 잊지 마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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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탁 | 경동시장 나들이
글 후암동삼층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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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은 이름 그대로 "하늘이 맑고 밝아진다"는 뜻의 절기입니다. 절기를 나눈 것 자체가 농사와 큰 연관이 있으니, 하늘이 맑아진다는 것은 곧 농사의 신호이기도 해요. 본격적인 봄 농사 준비를 시작하는 시점, 논밭을 갈고 씨앗을 준비하고 나무를 심는 계절의 출발점입니다. "청명에 씨를 뿌리면 잘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저는 이맘때를 '경동시장 가는 날'로 정해두고 있어요. 본격적인 봄나물을 만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도 다녀왔는데요, 봄나물 특파원의 소식을 전해드리자면 — 냉이는 이제 끝물이 오고 있고, 고사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취나물, 머위, 민들레, 쑥, 산마늘, 눈개승마는 지금이 한창 제철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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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벚꽃보다 봄나물로 봄을 만나고 있는 분이 또 계실까요? 꽃놀이 인파가 몰리는 그 시간, 시장 한 귀퉁이에서 나물 더미 앞에 서서 봄을 느끼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거든요. 한 번쯤 시간 내어 주변 시장을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위치 서울 동대문구 고산자로36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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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잡담 | 비치와의 용답·성수 산책
글과 사진 전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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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종하지 않는 이유를 아기들의 이타성에서 찾는 사람. 매일 묻어나는 세상의 때를 닦아내며 투명해지기 위해 '나노 단위의 수련'을 한다는 비치 님과 용답동의 오래된 골목을 지나 비치님의 성수 고향(?) 메쉬커피로 향하는 길에 나눈 잡담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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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메이트: 장비치(@chang_bee_chee_)
- 산책 코스: 용답동 골목길 ~ 성수 메쉬커피(@meshcoffee)
📍 Scene #1. 길가의 라바콘이 알려준 것
비치: 예전에 한남동 작업실 근처 골목마다 사장님들이 사적으로 세워둔 주차 금지 라바콘이 엄청 많았어요. 운 좋게 빈자리를 찾아 뱅글뱅글 돌면서, 제가 그 라바콘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운전하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 모습이 갑자기 너무 한심한 거예요. 종원: 사실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어도 되는 건데요. 비치: 맞아요.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건데, 불만을 표현하긴커녕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눈치를 보며 순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거죠. "아, 내가 일상에서도 이렇게 말 잘 듣는 훈련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억울하더라고요. 종원: 그래서 그때부터 라바콘 사진을 찍고 다니신 거예요? 비치: 네. 처음엔 라바콘이 어떤 권위나 힘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까 불쌍한 거예요. 이상한 사람이 와서 시비 걸고 발로 차고 가니까. 하나의 사물도 시간을 들여 관계를 맺으면 다르게 보일 수 있더라고요.
📍 Scene #2.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진짜 이유
비치: 뜬금없지만. 저는 인류가 아직 멸종하지 않은 이유가 아기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구가 이 심각한 인류를 털어내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는데, 애들이 너무 독해서 안 털리잖아요. 지구가 "아, 얘네 안 되겠네. 그냥 쓸어버릴까?" 하다가도, 아기들을 보면 포기하는 거죠. 아기들은 진짜 소름 돋게 이타적이거든요. 아무 계산 없이 베풀고, 또 의심 없이 덥석 받고요. 종원: 듣고 보니 진짜 그러네요. 어른이 될수록 주고받는 게 어려워져요. 비치: 맞아요. 저는 도와달라는 말을 진짜 못 하거든요. 그래서 아기들 보면 항상 깜짝 놀라요. 잘 주고 잘 받는 게 진짜 힘들잖아요. 매일 훈련해야 겨우 하는데, 아기들은 생각도 안 하고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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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산책 팁: 살곶이다리와 무용한 시간
용답동의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성수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탁 트인 '살곶이다리'가 있습니다. 차가 쌩쌩 달리는 소리 사이로 묘하게 시원한 물 냄새가 훅 끼쳐오는 곳이죠.
운이 좋으면 물닭이나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목적 없이, 그저 새들을 구경하며 무용한 시간을 즐겨보세요. 가끔은 억지로 힘을 내는 것보다, 비치 님처럼 툭 힘을 빼고 "살아야지 뭐" 하고 웃어넘기는 편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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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문장 | 보호수가 보호하는 건
글 현예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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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식물들이 화분을 건너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어떨까. 싱고니움이 축축히 젖은 흙에 환호하고, 장미 허브가 희미한 빛을 불평하며, 구불구불 갈색 물이 든 보스턴고사리가 소리치고 있다면. 최근 과학이 개가 인간과 눈 맞추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밝혀냈듯, 아마 곧 식물에 관한 경이로운 의사소통 능력이 속속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눈과 손이 없는 녹색 식물조차 마냥 끌어안게 되겠지. 식물은 슬픔을 느낄까. 또는 기쁨을 느낄까. 좌절하거나 희망을 갖기도 할까. 사실 이는 인간이 이름 붙인 감정과 구획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식물은 그때그때의 자극을 감지하고 반응하며 서로에게 위험을 알릴 뿐이다. 지구상에 살아 있는 개체에 대해 끊임 없이 인간을 대입해온 역사는 지난하다. 양파를 반쯤 물에 담근 채로, 칭찬한 개체와 욕설을 퍼부은 개체의 생장이 다르다는 실험은 몇 년 뒤 웃음 거리가 됐다. 다정히 말을 걸면 잘 자란다는 속설도 사실 통제되지 않는 변수(빛, 물, 바람, 관심 등)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증명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앞에서 골몰하는 인간이 좋다.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식물의 언어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경이를 넘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북마리아나 제도에 위치한 작은 섬 로타의 어느 숲에는 거대한 반얀트리가 살고 있다. 성인 열 명이 두 팔 뻗어 둥글게 안아도 모자랄 정도의 둘레를 지녔다. 아마 모든 인간이 그 앞에서 자그마해짐을 경험할 것이다. 로타 원주민들은 반얀트리에 섬을 돌보는 수호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나무 앞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표면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덕분에 반얀트리는 그 자리에서 꼿꼿이 수백년을(어쩌면 천년 이상을) 살아 남았다. 그에게는 생명의 도식이 필요 없다. 인간의 개입 없이도 건재하다. 미지의 영역을 '미지'로 두는 마음은 어떤 생명을 계속 살게 한다. 반대로 나무의 영험함을 잊은 땅에서는 덩치 큰 나무들 조차 쓰러진다. 얼마 전에도 경희궁 일대의 거목 134그루가 ‘생태’의 이름으로 베어졌다. 인간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도단이다.
나는 한동안 ‘보호수’를 동네를 지키는 영험한 수목이라고 알고 있었다. 로타의 반얀트리 수호신처럼,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가 근방을 지킨다고 말이다. 보호수 팻말을 볼 때마다, 마음으로 꾸벅 인사하곤 했다. 우리가 시각에 의존해 존재를 인식하듯, 어떤 존재는 시각 외 감각으로 바깥 존재를 인식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샤머니즘이라며 기함을 토할지도 모르지만. 지자체가 ‘보호’하는 나무임을 알고서는 조금은 싱거워했다. 사실 보호해야 하는 나무, 그렇지 않은 나무는 없다. 쉽게 베어야 하는 나무,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나무도 없다. 모든 나무가 살아있다. 그건 정진하며,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지금을 살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된 정자 곁에 덜렁 살아 남은 보호수 느티나무에 꽃이 폈다. 그 곁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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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함께하는 것이다. 희망은 실천 속에 있다. 우리는 다른 생명과 만나는 경이로움을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 상상력이 결국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유이다.
리베카 긱스, 고래가 가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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