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저물어갑니다. 한 가운데에 있을 때는 원망하던 추위를 막상 떠나보내려니 아쉽기만 합니다. 눈벌판에서 스노보드를 타 볼걸, 눈사람을 만들어볼걸, 귤과 붕어빵을 더 먹어둘걸. 다 못 누린 겨울이 아른거리죠. 저와 비슷한 아쉬움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면 희소식이 있어요. 우수에서 경칩 사이, 앞으로 15일 동안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마저 누릴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
중국에서 유래한 24절기는 사실 한반도의 실제 기후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얼음이 녹고 비가 내린다는 의미의 ‘우수’는 본격적인 봄으로 진입하는 시기라고 하는데요. 서울의 영하권 날씨는 얼마간 지속될 예정이예요. 봄을 맞이하는 옷장 정리도 아직 이른 시기죠. 끝에 다다른 겨울을 더 바싹 끌어안아야 하는 지금, 따끈따끈한 신간 <mada>의 겨울호를 읽으며 겨울을 곱씹어 보는 건 어떤가요?
요즘 봄동이 아주 핫합니다. 참 모를 일입니다. 갑자기 봄동 비빔밥이 유행하다니요. 제철 식재료가 다시 주목받는 것 같아 반갑고, 괜히 기분도 좋아집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봄동은 배추랑 어떻게 다를까요? 봄동은 왜 활짝 펼쳐질까요? 오늘은 그 차이를 조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봄동을 활용한 간단한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 볼게요.
일반 배추는 가을부터 겨울에 수확해, 흔히 김장김치로 많이 쓰이죠. 반면 봄동은 이름 그대로 ‘봄’에 수확합니다. 정확히는 겨울의 끝자락부터 초봄 사이에 수확하는데, 서리를 많이 맞을수록 더 달콤해진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이 시기가 봄동의 가장 맛있는 제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겠죠?
봄동 비빔밥 레시피는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서, 저는 조금 다르게 봄동 샐러드 파스타를 만들어봤어요. 짧은 파스타 면을 사용해 봄동과 함께 숟가락으로 서걱서걱 퍼먹으면, 꽤 상쾌한 맛이 납니다.
봄동 120g (넉넉히) 짧은 파스타 면 150g
식초 40g 올리브유 20g 매실청 30g 꿀 20g
다진 마늘 5g 다진 양파 15g
분량의 재료를 모두 섞어 소스를 만들고, 소금물에 삶은 파스타 면과 봄동을 함께 버무려 주세요. 금귤이나 천혜향 같은 제철 과일을 곁들이면 더 잘 어울립니다.
*봄동 파스타는 곧 마다밀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오늘은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절기, 우수(雨水)입니다. 얼어붙었던 보문천의 얼음이 녹아 속이 투명하게 비치기 시작하는 이 시기에, 스스로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에 집착한다는 수연과 나눈 잡담 중 일부를 전합니다.
수연이 집착하는 것
수연 : 종원도 집착하는 게 있어요?
종원 : 글쎄요 그런게 있나?
수연 :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종원 : 음
수연 : 근데 말하다보니 제가 먼저 생각났어요. 제가 집착하는 거.
수연: 저는 투명함에 집착해요. 사람들을 온전히 다 알고 싶거든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상대방이라도 저를 알 수 있게 저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아무런 '척'도 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려 하죠.
수연: 근데 이게 사랑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반가운 사람을 앞에 두고 겉과 속이 다른 얘기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까 봐 너무 걱정돼요.
종원: 하지만 너무 솔직해서 곤란해질 때도 있지 않나요?
수연: (웃음)
수연에 관하여
"반가움, 투명함, 그리고 사랑."
반가움과 투명함에 집착한다는 수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부끄러움이나 싫은 점조차, 수연은 '투명함'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나의 불완전함을 먼저 고백하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사랑이자, 용기가 된다.
수연이 운영하는 호락호락감자의 모든 활동에는 이 따뜻한 저변이 깔려 있다. 울퉁불퉁하고 불완전한 각자의 모습 그대로가 가치 있는 일이 되는 곳. 수연은 용기와 사랑이 되는 투명함으로 호락호락감자의 활동을 이어간다.
다시 예진입니다. 안부를 묻지 못한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부지런히 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쉬는 동안 느슨해졌던 몸과 마음에 다시 시동을 켜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창밖을 흘긋거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오늘 레터의 가장 특별한 소식은 역시 마다 겨울호 발행일 텐데요. 이번 호는 첫 장부터 기존에 시도한 적 없던 낯선 형식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바로 겨울호를 위해 다녀온 강원도 필드 트립 이후 쓰여진 짧은 소설이에요.
그 무렵 제 관심사는 ‘겨울의 이유’였습니다. 추위를 저주하는 이들에게 겨울의 이유를 항변하고 싶었거든요. 365일 온난한 기후에 어떤 불편함도 없는 진공상태의 나날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극한의 추위가 만들어내는 남북극의 하얀 빙하와 바다 얼음이 태양에너지를 반사하는 알베도 현상은 계절을 지켜냅니다. 알베도 현상이 없다면 지구는 곧바로 찜통 행성이 된다고 하죠. 겨울을 사수하기 위한 발버둥은 전 지구적입니다. 북극 원주민 이누이트는 미국을 상대로 추울 권리를 보장하라는 청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겨울 없는 지구란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행성이니까요.
울퉁불퉁한 부분을 매끄럽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발전하는 기술이 우리를 더 나은 세계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어떤가요.마다 겨울호에 담은 소설에는 훗날 추위를 잊은 인류를 상상하며 썼습니다. 전진하는 인류의 끝이 무엇인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신 유행 패션을 온몸에 두르고, 아무나 먹지 못하는 고급 식재료가 식탁에 가득한 게 정말 멋진 일일까? 방방곡곡 매립경작지를 만들고, 갯벌을 간척하면 정말로 풍요로워지는 걸까? 우리가 멋지다고, 풍요롭다고 생각하고 또 근사하다고 느끼거나 욕망을 좇는 건 어떤 사상에 얽매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삶이 고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